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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과 이름짓기

 아기는 아이누어로「테이네시(젖은 변)」,「손(변)」,「손탁(변 덩어리)」등으로 불려졌습니다. 더러운 이름으로 부르면 악마가 가까이 오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름은 생후 바로 붙여지는 것은 아니며, 수 년 지나 어린이의 개성이 나타나면 명명하였습니다. 부모의 바램이나 출생 후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만, 형이나 누나가 죽은 경우는 병마를 피하라는 마음으로 일부러 더러운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습니다.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특히 여성이 남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시 되었습니다.

아이를 등에 업은 모습

성인까지

 남자아이는 어린이용의 활화살을 가지고 놀이 중에서 사냥의 훈련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또한 조각연습을 하거나 이독파라고 불리는 아버지의 가계를 나타내는 문양을 파는 방법 등을 배웁니다. 의례의 예절이나 신에게의 기원용어 등도 조금씩 몸에 익혔다고 합니다.

 여자아이는 놀이를 하면서 강변의 모래사장이나 화로의 재 위에 의복문양을 그리는 연습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릴적 부터 바느질의 연습도 하였습니다. 그 외에 나무껍질로 부터 섬유를 얻는 방법이나 베짜는 방법, 돗자리를 엮는 방법, 요리 등 다양한 것을 몸에 익혔습니다. 지방에 따라서 조금씩 틀리지만 대체로 초경을 하는 시기부터 입주변이나 손 등에 문신을 넣었다고 합니다.

입과 손에 문신을 넣은 성인여성

결혼

 어릴적 부터 정혼자가 정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만, 당사자들이 납득하지 않은 경우는 약혼을 파기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기면 남성은 여성용 작은 도구류, 여성은 장갑 등의 의복류를 선물하며, 선물을 받은 측은 그것을 몸에 장식하는 것으로 교제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합니다.

 여성은 결혼 전에 어머니 또는 할머니로부터 어머니의 가계를 나타내는 속옷허리띠를 받는 것과 함께 만드는 법을 익힙니다. 그 후 죽을 때까지 몸에 지녀야 하는 중요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보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속옷허리띠를 가진 여성(어머니의 형제나 그 자식)과는 결혼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결혼의식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여성이 적령기가 되면 다른 집을 짓고 그 곳에 구혼하는 남성이 출입하는 예가 보여집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밥을 지어주고, 베개를 내어주는 것과 남성은 밥의 반을 먹고 나머지를 여성에게 줍니다. 여성이 나머지 밥을 먹으면 구혼을 받아들인 것이 됩니다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을 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외에도 중매역의 사람이 남성의 집에 여성을 데리고 오는 등 여러 형태의 기록이 전해집니다.

결혼식의 모습

출산

 임신을 알게된 뒤나 5개월 정도 지나 복대를 하는 시기 등, 그때 그때마다 임산부와 태아의 무사를 신에게 기원합니다.

 출산이 가까워지면 시소(신창으로 부터 오른쪽)에 분만을 위한 장소가 준비됩니다. 출산 시는 임산부의 어머니쪽 여성들이 출산을 돕는다고 합니다.

가족

 일반적으로는 아이가 성장하여 결혼하면 순차적으로 집을 나와 별거하며, 한 집에 다수의 가족이 사는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 신혼부부가 어느 쪽의 생가에 가깝게 사는 지는 자유였으며 반드시 신랑이 자신의 생가에 신부를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출산의 모습

죽음

 죽음을 맞이하는 시기를 위해 몰래 특별한 장갑과 각반, 신발 등의 수의가 준비됩니다. 남성의 수의는 대부분 여성이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만, 여성의 경우는 어머니쪽의 여성이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여성은 가장 중요한 수의로서 속옷허리때을 걸쳤다고 합니다만,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속옷허리띠가 다르기때문에 서로 상대방의 수의를 입히는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장례식은 승려와 같은 전문적 종교인이 집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장례의식 전부 일반의 남성에 의해 죽은 사람의 집에서 행해졌습니다.

 장례에는 주변 마을로 부터도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나오면, 묘비가 되는 나무를 산에서 잘라옵니다. 형태는 지방에 따라 다릅니다. 시라오이지방에서는 남성의 묘비는 끝이 창모양, 여성의 바늘침의 머리부분의 모양을 딴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매장은 토장이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사용한 일용품, 장식품, 보석 등을 부장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성묘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대신에 각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불의 신을 통해서 선조에 공물을 바치는 것이외에도 정기적으로 선조공양의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저 세상에서 죽은 사람의 주거로서 이제까지 살았던 집을 태워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어 이 세상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시라오이지방의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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